기쁨의 브랜치 프리랜서 | 살아가는 일상과 꿈꾸는 이상의 간극을 좁혀 나가고자 글을 씁니다.brunch.co.kr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이돌은 BTS RM이다. 하지만 아미라면 알겠지. 누가 그를 아이돌로 한정할 수 있단 말인가? 사실 내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아티스트 중에서도 다재다능하기 때문이고, 내가 좋아하는 면을 그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멋진 외모를 가진 연예인이지만 음악, 책, 미술, 자전거를 사랑하는 취향이 좋다. 특히 예술적 취향이 곧고 청결해 따라 좋아하는 맛이 난다. BTS의 존재를 몰랐을 때는 가까이서 무대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들이 누군지 몰라 다른 사람의 흥을 관망했다. 게다가 RM이 영어로 진행을 맡은 행사였기에 지금은 그날을 절실히 후회하고 있다. 10대들이 BTS ‘FIRE’를 함께 부르며 정말 불타던 현장에서 강 건너 불 보듯 바라보던 나는 어느 날 RM 인터뷰를 읽고 뒤늦게 빠져들었다. 그의 말투와 생각하는 관점이 흥미로웠고, 그날부터 그룹은 물론 RM이 개인적으로 쓰거나 불렀던 랩과 노래를 모두 찾았다. 어떻게 이런 가사를 쓸 수 있는지 철학자가 따로 있고 시인이 따로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RM은 책을 많이 읽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과연 가사를 보고 있으면 이해할 수 있다. 그가 만든 음악은 모두 좋아하는데, 그 중 Trivia 승: Love라는 노래를 들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목소리만으로도 충분히 멋지는데 무대를 꾸밀 때는 눈을 뗄 수 없는 힘마저 갖고 있었다. 무엇보다 아티스트로서 그룹 정체성을 담은 퍼포먼스를 몸이 부서질 정도로 펼치는 것을 보면 바로 종합예술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라고 느낀다. RM은 유명한 미술 애호가로도 알려져 있다. 내가 인스타그램을 삭제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그의 근황을 보고 싶어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스타그램 아이디는 ‘rkive’인데 정말 김남준 아카이브를 무료 관람하는 기분이 든다. 한국 원로 화가의 작품을 소개하거나 외국 작가의 작품을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녹여 누구나 엿볼 수 있도록 오작교를 두는 셈이다.작년 여름 모처럼 서울에 갔을 때의 일이다. 남편은 내가 좋아하는 덕수궁을 마지막 방문 코스로 골랐어. 그곳에서 열린 장=미셸 오트니에 전시를 꼭 보고 싶다는 말이 생각난 것이다. 그는 인도 여행 중에 사람들이 집에 벽돌을 보관하는 것을 봤다고 한다. 언젠가 나만의 집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담은 행위였다. 거기에 영감을 받아 유리벽돌을 제작하여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유리공예가들이 직접 입으로 불어 만든 것이라고 한다. 각각의 고유한 형상과 색깔을 가진 벽돌로서 이번 덕수궁 전시에서 그것들을 이용한 가장 거대한 작품을 시도한다고 알려져 있어서 꼭 가보고 싶었다.하지만 폭염으로 지친 아이들이 안쓰러워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동네에 있는 미술관이라면 몰라도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서울을 떠나 살고 있다. 이제 우리는 서울을 여행으로 오는 처지가 되어버려서 연일 36도가 넘는 여름이었다. 고맙지만 나는 괜찮으니까 집에 가자고 했어. 남편은 그렇게 가면 내가 서운할 것이라고 말했다. 역시 남편은 내 마음을 제일 잘 알아. 사실 속내는 그랬기 때문에 못 이기는 척 두 아이에게 무리가 되는 일정임을 알면서도 덕수궁 바로 앞까지 갔다. 역시 두 아이는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덕수궁을 눈앞에 두고 줄이 길게 늘어선 가게에서 와플을 먹겠다고 졸랐다. 테이크아웃 전문점이라 앉을 자리도 없었다. 오히려 그 옆에 에어컨이 있는 다른 매장으로 들어가자고 했지만 아이들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네 살과 여섯 살의 광소콜라보였다. 어쩌면 34세 엄마 때문에 아이들이 미칠 것 같았을지도 모른다. 땡볕 아래 서 있는 남편이 자기에게 맡기고 가라고 나를 보냈다. 남편은 항상 고맙고 미안한 존재야. 표를 사러 서둘러 달려가자 뒤통수에서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렇게 장=미셸 오토니에의 푸른 강을 포기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 RM의 인스타그램에 생각지도 못했던 장 미셸 오트니에게 전시 사진이 올라왔다. 그는 오래전부터 구슬 작품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번 전시에 방문한 것 같았다.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시선으로 작품을 볼 수 있어서 기뻤다. 유리벽돌에 빛이 반사되는 모습이 마치 보글보글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마법사 솥단지 같았다. 다만 두 가지가 너무 아쉬웠다. 찬란한 유리벽돌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날 포기한 덕수궁에서 어쩌면 RM을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 어느 날은 미국 대표 미술관 중 하나인 LA 카운티 미술관(LACMA·라마)에서 열리는 전시에 RM이 재능기부를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글과 영어로 해설 녹음을 한 것이다. 작품 130여 점을 선보이는 전시인데, 그 중 10점은 RM이 선정에 참여해 해설 녹음까지 했다고 해 여러모로 더욱 관심이 쏠렸다. 아티스트를 사랑하는 마음이 아무리 커도 미국까지 갈 수는 없지만 다행히 국립현대미술관 사이트에 오디오 파일이 공개됐다. 해설은 최영신의 고종황제 어진으로 시작했고, 두 번째 작품은 나혜석의 자화상이었다. 얼마 전 라디오에서 김미숙 배우의 목소리로 나혜석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번에는 가수 RM의 목소리로 나혜석의 작품 해설을 듣게 되다니 예술은 결국 돌고 모든 영역이 만나는 지점일까. RM은 미술관에 가는 이유를 그렇게 말했다. “BTS를 오래 하고 싶고 그러기 위해서는 가수 RM 이전에 자연인 김남준으로 존재하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내가 그런 특별한 제목을 가진 운명은 아니지만 이름을 대신할 다른 수식어가 있긴 하다. 직책도 되기도 하고 남편 이름도 되기도 하고 아이들 이름도 되기도 한다. 나도 이런 역할을 오래 하고 싶기 때문에 나로 존재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그런데 이렇게 쓰다 보면 연예인을 좋아하는 친구들을 보고 유치하다고 생각한 게 미안해진다. 일반적으로 팬들의 마음이라고 부르는 마음을 최대한 줄이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한 것 같다. 이렇게 된 김에 외쳐볼게. 제일 좋아하는 아이돌, 제일 좋아하는 아티스트 김남준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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